세상을 뒤흔든 질병과 치유의 역사 ⑦ (2019년 1/2월호)

부다페스트 통곡의 버드나무,
잎마다 새겨진 이름

 

부다페스트에서 내가 머물던 호텔은 페스트 중심가에서 버스로 15분 정도 걸리는 산 중턱에 있었다. 좌우로 크게 굽은 고갯길을 구형 버스가 빠른 속도로 구불구불 돌며 올라간다. 흔들리는 버스에 따라 이리저리 쏠리는 승객 틈에 섞여 나는 차창 밖의 우거진 숲을 멍하니 바라다본다. 가끔 숲이 끊어질 때면 저 멀리 페스트 시가지가 보였다가 다시 숲에 가려졌다.


도중에 작은 기차역이 보인다. 두 량 정도의 성냥갑 같은 전철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그 역전의 양진달래 꽃이 활짝 핀 베란다 아래는 둥근 테이블이 놓인 카페가 있다. 그곳에는 몇 명의 손님이 신문을 펴 들고 커피를 마시고 있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도 숲속에 있어서 야외에서 식사할 때면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들이 웅성거린다. 가끔은 모감주나무 열매가 “따닥따닥” 경쾌한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오늘은 자유교를 건너 바오로 회원이며 동굴 교회에 있는 콜베Maksymilian Maria Kolbe 신부의 초상을 보기로 했다. 콜베 신부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다른 사람을 대신해 죽었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페스트 지구까지 내려와 어수선한 거리를 마냥 걸었다. 보행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들이 난폭하게 스쳐 지나간다.


금이 간 아스팔트와 국회의사당 근처의 농업성 건물 벽에는 수많은 총탄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 1956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헝가리 국민들의 참극이 빚어낸 기억이다. 번화가에는 화장품과 의류 상점 등이 늘어서 있고 패스트푸드점도 있어 관광객이 몰려든다. 거리에서 아이가 딸린 여성이 관광객에게 동전을 구걸하며 손을 내밀고 있다.


곡선이 아름다운 공공시설물의 정면, 푸른색과 녹색 타일을 바른 산뜻한 지붕과 벽면에 아로새 긴 세라믹 도안, 어딘지 동양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페스트 거리를 나는 한가롭게 배회했다. 중앙시장을 지나 자유교를 건너자 눈앞에 암반지대가 나타나며 겔레르트 언덕이 위엄을 자랑한다. 그 언덕 아래에 암벽을 깨트려 동굴을 만든 동굴 교회가 있다. 차량 왕래가 잦은 교차로를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뻥 뚫린 동혈이 보이고 입구에는 격자무늬의 철문이 있다. 동굴 안쪽에서 주황색 불빛이 어른거린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작은 굴들을 예배당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각각의 예배당을 마리아상이 내려다보고 있다. 가장 안쪽 제단에는 예수의 십자가상이 있고, 콜베 신부의 초상도 발견할 수 있었다. 동굴 교회의 신비적인 분위기와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성당에 위압당한 나는 동굴 교회를 통해 종교의 근본이념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작은 의자 앞에 잠시 멈춰선 나는 바위 표면이 그대로 드러난 천장을 올려다보며 장미 무늬가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와는 다른 평온함을 느꼈다. 애초에 겔레르트 언덕은 아시아계 사람들이 많이 사는 이곳에서 기독교를 포교하던 겔레르트 선교사를 포도주 통에 가두어 언덕 위에서 도나우 강으로 떨어뜨려 살해한 장소였다. 민족의 차이를 극복하고 유럽과 아시아가 서로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고 아우슈비츠에서 호소했던 콜베 신부가 이 겔레르트 언덕 아래의 동굴 교회에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콜베 신부와 함께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의 교회당 시너고그가 이곳에 남아 있다. 부다페스트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의해 점령당했다. 그때 헝가리에 거주하던 74만여 명의 유대인 중 약 60만 명이 살해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후에 생존이 확인된 사람은 단 7만 명에 불과했다. 나는 그 시너고그에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을 갈아 탄 후 2개의 탑 위에 둥근 물체가 놓여 있고 가로 줄무늬가 아름다운 유대교회당 시너고그에 도착했다. 아직 관람이 가능한 시간대로 아치형 입구로 들어가 입장권을 손에 넣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너고그의 내부는 다양한 색상으로 휘황찬란하게 장식되어 마치 별세계와 같았다. 천장에는 별자리 모양의 전구가 가득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이국적인 배색, 기하학 문양, 황금 제단, 여성 전용의 2, 3층 발코니 등 모든 것이 동굴 교회와는 대조적인 모습에 나는 현기증을 느끼며 정원으로 뛰쳐나왔다.


따듯한 햇살 아래 무성한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정원 뒤편에서 나는 돌로 만든 네모난 조형물을 발견했다. 궁금한 생각에 다가가 보니 그것은 놀랍게도 수많은 묘비였다.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유대인은 시너고그 내에 묘지를 만들지 않는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수많은 묘석이 있지 않은가.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서로 겹쳐진 묘비에는 이름과 사망 일시가 보였다. 거 기에는 1943, 1944, 1945라는 숫자만이 표기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나치의 살육 행위로 이곳에 엄청난 시체가 쏟아져 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이 시너고그 내에 동포의 유해를 계속 매장했을 것이다. 이곳 시너고그의 진실은 바로 이유대인 묘지였다.


그 자리에 서서 못 박힌 나에게 정원을 청소하던 여성이 다가와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은색 금속으로 만들어진 분수 모양의 기념물이 보인다. ‘저쪽으로 가보세요.’ 그녀의 눈에 담긴 강렬한 메시지를 느낀 나는 자갈길을 따라 은색 버드나무 모양의 기념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앗!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나왔다. 엄청난 수의 버드나무 잎 하나하나에는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들의 이름과 사망 연도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여기에도 1942, 1943,1944, 1945라는 숫자가 이어졌다. 이 사망자의 이름이 새겨진 버드나무를 사람들은 ‘통곡의 버드나무’로 부른다. 눈부신 햇살에 통곡의 버드나무가 은색으로 반짝인다. 잊어서는 안 될 진실을 눈앞에 두고 나는 꽤 오랫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글 오카다 하루에(岡田晴惠)

옮긴이 황명섭

 

 

글쓴날 : [19-02-05 13:53] 스쿠바다이버기자[diver@scubamedia.co.kr]
스쿠바다이버 기자의 다른기사보기